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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1개월간 진행된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
6ㆍ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감행되어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간 한반도에서 전개된 전쟁이다. 3년 1개월간의 전투로 수많은 인적ㆍ물적피해를 입었다.
전쟁으로 인한 남북한 민간인 피해(<표 1> 참조)는 약 250만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남한의 인명피해는 민간인 119,968명이며, 이중에서 사망은 244,663명이고 학살이 128,936명이다. 북한의 민간인 피해도 150만 명이나 된다. 또한 피난민이 320만여 명, 전쟁미망인도 30만여 명, 전쟁고아도 10만여 명이 각각 발생하였다.
<표 1> 남북한 민간인 피해현황
(단위 : 명)
계 |
남한 |
북한 |
|||||
소계 |
사망 |
학살 |
부상 |
납치 |
행불 |
||
2,490,968 |
990,968 |
244,663 |
128,936 |
229,625 |
84,532 |
303,212 |
1,500,000 |
# 피난민 320만여 명, 전쟁미망인 30만여 명, 전쟁고아 10만여 명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제공(2005년 자료).
교회 및 기독관련 건물의 피해
6.25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교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교회 건물이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화재로 소실되었고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커르와 앤더슨(Edith A Kerr and George Anderson)의 보고에 의하면 전쟁이 시작된 후 6개월 간의 피해는 1,373개의 교회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666개가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기독교 기관과 미션스쿨이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서울 소재의 성서공회와 기독교서회가 불타서 그동안 보존되어 오던 귀중한 자료가 소실되었고 또한 YMCA가 불탔고 세브란스 병원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서울은 전체의 80%가 폐허가 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교회 피해 상황은 학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공식적인 통계는 다음 <표 2>와 같다.
<표 2> 6.25전쟁으로 인한 교회의 파괴상황
(단위 : 개소)
구분 |
장로교 |
감리교 |
성결교 |
구세군 |
합계 |
완전소실 |
152 |
84 |
27 |
4 |
267 |
파괴 |
467 |
155 |
79 |
4 |
705 |
합계 |
619 |
239 |
106 |
8 |
972 |
* 이상용, 기독교연감, 백합출판사, 1976, 37쪽.
성도들의 피해
성도들의 피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순교를 당한 손양원 목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목회자와 기독인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서울에서는 신당동중앙교회 안길선ㆍ김예진 목사가 순교했고 서대문 감옥에서 주채원 목사 등이 순교했고 김응락 장로는 영락교회 앞에서 순교했다. 황해도 봉산의 계동교회 180여 명의 성도 중 175명이 예배당 안에서 갇힌 채 태워죽임을 당했고 대전형무소에서는 남한의 수많은 교역자와 평신도가 투옥되어 있었는데 공산당이 후퇴직전에 감옥에 불을 질러 모두 살해되었다.
이렇게 6.25전쟁 중에 순교하거나 납치당한 교역자 수는 장로교 177명, 감리교 지도자 44명, 성결교 지도자 11명, 구세군 6명 등 모두 240명에 이를 정도이다.
손양원 목사의 예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목자와 성도들이 순교했는지 알 수 있다. 손목사는 9월 28일에 총살당함으로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장면은 김인서 목사는 다음과 같이 기억하였다.
6.25 때 공산군은 손양원 목사 외 120여 명을 여수 감옥에 구금하였다가 9월 28일에 모두 한 줄에 묵어 가지고 미평동산으로 끌고 갔다. 발을 벗겨 40리 자갯길을 걸리우니 발은 다 찢어져 피의 행로였다. 밤중에 10명씩 묶어 꿇어 앉히고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며 돌로 쳐서 죽였다. …… 불신자들의 울부짖음과 신자들의 찬송 소리와 기도 소리가 한 데 어우러졌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의 찬송 소리가 들리다가 차차 10명, 한두 명의 소리가 가늘게 들리더니 나중에는 그 소리마저 끊어져 조용한 밤이 되었고 희미한 달과 별빛이 순교자들의 시체를 조상하였다. 손양의 목사의 시체는 어깨와 두 손가락에 총알이 관통하였고 그 입은 돌에 맞아 상하고 이빨이 부러져 있었다. 아마 찬송하며 전도하면서 쳐든 어깨와 손을 총으로 쏘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그 입을 돌로 친 것이리라(김인서, 김인서 저작전집제5권, 신망애사, 1976, 246쪽).
이외에도 기독교 지도자와 성도들이 북한군에게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 참상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국가의 안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에 지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우리가 목숨 걸고 국가 안보를 위해 얼마나 기도해야 하는지 마음 속 깊이 뼈져리게 교훈으로 새겼으면 좋겠다.
김동정 장로(신성교회, 카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