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주소 |
---|
춘천지역의 기독인들의 피난과 예배당의 파괴2
춘천중앙교회 이외에도 대부분의 교회가 소실되거나 파괴되어 임시 예배당에서 예배드렸다.
후평감리교회(현 신성교회)는 수복 후 김종철 선생(이후 장로)이 친지에게 돈을 빌려 구입한 기와집 12칸과 초가 7칸을 예배처소로 활용하여 당시 10여 명이 예배드리기도 하고 유철신 목사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 전시중인데도 춘천중앙교회 소속의 김우종 목사(당시 강원일보 사장)가 후평교회를 돌보다가 김수연 선생(1955년 이후 전도사)이 후평교회에서 목회하였다. 석사감리교회도 예배당이 불타고 교인들이 흩어졌다가 수복이 되었을 때는 천막 예배당에서 예배드렸고 흙벽돌로 된 3칸 주택을 짓기도 하였다.
후평교회 유철신 목사 가정예배처(1952.12.25)
춘천중앙성결교회도 북한군의 남침으로 완전히 불타버리고 김규호 목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부산 등지로 피난을 갔다. 1952년 5월 피난에서 돌아온 소수의 성도들은 부산에 내려가 김규호 목사를 모시고 올라와 요선동 임시 예배처소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홍순각, 최정화, 신덕기 등이 김규호 목사를 도와 교회를 재건하였다. 이에 전시 중인데도 여름성경학교 등을 계속 운영하였다.
춘천중앙성결교회(수복 후 요선동 임시교회 여름성경학교, 1952.8.3)
장로교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춘천동부장로교회는 전소되어 흔적도 없었고 춘천제일장로교회는 예배당이 전소되어 1951년 4월 낙원동 58번지에 있는 조덕진 씨 집터에 판자교회를 신축하고 이현보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였다. 성광장로교회는 1953년 요선동 마루턱에 있는 적산가옥촌의 빈 터를 사들여 목조로서 큰 건물을 세웠는데, 주동인물은 최준성, 오 모 씨, 김 모 씨 등이 있고 초대 목사로는 평양신학 출신의 임정묵을 초빙, 시무케 하였다.
침례교의 경우, 1953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춘천에서는 이우영 목사가 5명의 성도(한이남ㆍ한태봉ㆍ성기범ㆍ성봉래ㆍ이창을)과 함께 옥천동에서 개척예배를 드리면서 춘천교회가 출범하였고 이후 옥산포교회와 샘밭교회도 세워졌다.
대한성공회 춘천교회도 1949년에 건립되었으나 6.25전쟁 중에 완전히 소실되었다. 구세군 춘천교회의 경우는 1937년에 장응화ㆍ음경달 두 사관이 개척사관으로 춘천에 파송되어 춘천소대 개영식을 갖고 다음 해인 1938년 신필호 대위가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성장해 가던 중에 무슨 영문인지 1949년 1월 4일 문을 닫았다가 1955년에 정식으로 개척하게 되었다.
1953년 감리교 동부연회 춘천지방 박내철 목사의 동부연회 연회록에 의하면,
6.25사변의 톱질전쟁이 빚어낸 강원도 춘천시 춘천군, 홍천군 그리고 경기도 가평군을 포함한 본 지방의 파괴의 도(度)는 여지없이 물심양면으로 재건하기 다대(多大)한 곤란을 느끼는 바 없는 가운데도 있게 하시는 능력 많으신 주님의 역사는 폐허 속에서도 새 생명의 싹을 트고 말았습니다. 불초거반연회(不肖去般年會)에서 미수복지인 춘천지방에 단독임명을 받고 지방을 순회해 보니, 세 곳만 반파 정도로 남았을 뿐이요 25교회예배당과 15기도처와 주택 및 부속기관건물 전부가 전소전파(全燒全破)의 참상(慘狀)이었고 신자불신자간(信者不信者間)에 대하는 이마다 눈물의 대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16구역 26교회 19기도처와 이곳저곳에서 보내주신 15명의 남녀교역자로서 지방을 이루어 동력자의 피어린 노력과 전쟁에 날아간 물질에 미련을 두던 평신도제위(平信徒諸位)도 주안에서 소망을 품고 현실의 비참한 폐허 속에서 살면서 이민족을 살리고 건질 방주를 만들어보고 싶은 간절한 의욕으로 폐허와 도전한 결과 가건물(천막 등등)이나마 12개소의 예배당을 세웠고 교회임원수 260명, 신자수 2,600명(남자 800명, 여자 1,800명), 주일학생수 4,500명으로 앞으로 떨어짐보다 올라갈 것만 기대되는 본 지방 형편을 생각할 때 기쁨을 주께 돌리면서 이 보고를 드립니다.
라고 나오는데 거의 모든 교회와 기도처, 그리고 사택 및 부속기관 건물들이 전소되거나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목사와 장로가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남은 춘천의 소수 교인들은 파괴된 시가 속장 집 등에 몰래 모여 전쟁이 속히 끝나기를, 피난간 성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래서 예배당을 다시 세우고 기쁨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비록 전쟁은 종결되지 않았지만 수복된 춘천에 돌아온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대한성공회 등의 그리스도인들은 반파된 선교부 건물이나 판자 교회, 천막 예배당 등에서 우선 예배부터 드리는 참 믿음의 성도 모습을 보였다.